시리즈
장재형 목사 히브리서 강해 아카이브
아카이브 분류
히브리서 전체 강해 Pillar Page에 연결되는 Cluster 콘텐츠 · 1-4장(아들의 탁월성)에서 대제사장 신학으로 넘어가는 전환점
히브리서 3장 1-6절의 핵심은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 예수"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신실한 종으로 섬겼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소망의 확신을 끝까지 굳게 잡는 하나님의 집으로 살아가야 한다.

1. 히브리서 5강의 위치: 모세보다 크신 예수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선포한다. 히브리서 1장은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와 여러 방식으로 말씀하셨지만,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히브리서 2장은 그 영광의 아들이 고난을 받으시고 형제들과 같이 되심으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구원의 주가 되셨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히브리서 3장에 이르면 비교의 대상이 모세로 옮겨진다. 유대 신앙 전통에서 모세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출애굽의 지도자였고, 율법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광야의 백성을 인도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에게 모세는 신앙과 민족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가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한다는 것은 단순한 인물 비교가 아니라, 옛 언약과 새 언약, 종의 사역과 아들의 사역, 집 안의 섬김과 집을 세우신 주권을 비교하는 일이다.

이 비교는 모세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문제는 모세의 신실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더 큰 영광이다. 모세가 위대하다면, 그 모세가 섬긴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예수님은 얼마나 더 위대하신가. 모세가 집 안에서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종이라면, 예수님은 그 집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아들이시다. 이것이 히브리서 3장 1-6절의 중심 논리다.

장재형 목사의 히브리서 강해 5강은 이 본문을 통해 성도의 시선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시킨다. 신앙은 위대한 종교적 전통이나 존경받는 지도자를 붙드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신앙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데서 새로워진다.

2.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

히브리서 3장 1절은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 안에는 성도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성도는 단지 종교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땅의 기준, 세상의 평가, 눈에 보이는 현실만으로 자신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또한 히브리서는 성도를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을 가진다. 성도는 스스로 거룩을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구별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히브리서는 "함께"라는 표현을 통해 성도의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신앙은 혼자만의 내면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함께 부름받고 함께 소망을 붙드는 삶이다.

이 정체성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도는 흔들릴 때마다 자신이 어디서 부름받았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사람의 인정에서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부름받았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부름받았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권면은 곧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명령으로 이어진다.

3.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명령

히브리서 3장 1절의 핵심 권면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예수님을 잠시 떠올리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고, 마음을 집중하여 살피며, 삶의 중심에 두라는 뜻이다. 히브리서는 성도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사람은 자신이 깊이 생각하는 대상의 영향을 받는다. 두려움을 깊이 생각하면 두려움이 커진다. 상처를 깊이 생각하면 상처가 마음의 중심을 차지한다. 실패의 기억을 깊이 생각하면 다시 일어설 힘을 잃기 쉽다. 사람의 평가를 깊이 생각하면 믿음보다 눈치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믿음은 다시 중심을 찾는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이루셨는지, 지금도 성도를 위해 어떤 분으로 계시는지를 바라볼 때 성도의 마음은 다시 복음 위에 선다.

장재형 목사의 히브리서 강해는 이 지점을 중요하게 짚는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흔들리는 상황 속에 있었다. 그들은 박해와 압박을 경험했고, 이전의 익숙한 체계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그런 이들에게 히브리서는 단순히 "더 노력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한다. 신앙의 회복은 의지의 강화에서 시작되기보다 시선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예수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종교적 표어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시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아들이심을 묵상하는 것이다. 성도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될 때, 믿음은 외부의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방향을 얻는다.

4. 예수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부른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분임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 만들어 낸 길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내신 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과 마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위해 보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위대한 종이었다. 그는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전달했으며,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다. 그러나 모세와 예수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모세는 말씀을 받은 사람이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다. 모세는 집 안에서 주어진 말씀을 전달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는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설명하시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뜻과 구원이 드러난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가 예수님을 사도라고 부를 때,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최종적이고 완전한 계시자이심을 증언하는 말이다.

성도는 이 사실 위에서 믿음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추측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분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완성하여 나타내신 분이다.

5. 예수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동시에 "대제사장"이라고 부른다. 사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에게 오신 방향을 보여준다면, 대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방향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 이 두 방향이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게 만난다.

구약의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제사는 죄의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고,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중보자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들은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고, 그들 자신도 연약한 인간이었다. 히브리서는 이후의 장들에서 예수님이 더 좋은 대제사장이심을 자세히 설명한다. 히브리서 3장 1절은 그 큰 흐름의 출발점처럼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소개한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던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분이다. 그분은 중보자이시며, 길이시며, 성도의 담대함의 근거이시다.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공로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내 마음이 지금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는가"이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다시 발견한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마음을 누를 때에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담대함을 얻는다.

6. 모세는 신실한 종,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히브리서 3장은 모세의 신실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한 사람으로 제시된다. 그는 출애굽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광야의 백성을 인도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에 충성했다. 히브리서는 모세를 실패한 지도자로 평가하지 않는다.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의 집 안에서 신실한 종이었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모세와 예수님의 "신실함의 차이"가 아니라 "위치의 차이"다. 모세는 집 안에서 섬긴 종이고, 예수님은 그 집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아들이시다. 종은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다. 그러나 아들은 집의 주권과 상속권을 가진다. 종은 집 안에 속해 있지만, 아들은 집을 대표한다. 종은 주인의 뜻을 수행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고 완성한다.

이 차이를 이해할 때 히브리서 3장 1-6절의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모세가 아무리 신실해도 그는 하나님의 집 자체가 아니며, 그 집의 주인도 아니다. 그는 집 안에서 섬긴 자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분이다. 집을 세운 자가 집보다 더 존귀한 것처럼,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예수님은 그 집 안에서 섬긴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다.

이것은 오늘 성도의 신앙에도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신앙생활에서 사람은 때로 눈에 보이는 지도자, 전통, 제도, 경험에 크게 의지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종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러나 성도는 종을 주인처럼 붙들어서는 안 된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도 그는 예수님보다 크지 않다. 신실한 종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성도의 예배와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되어야 한다.

7.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3장 3절은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고 말한다. 이 비유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어떤 집이 아름답고 견고하다면, 그 집을 세운 이의 지혜와 능력이 드러난다. 집은 스스로 세워지지 않는다. 집에는 세운 자가 있다. 히브리서는 이 원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더 큰 영광을 설명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집 안에서 신실했다면, 예수님은 그 집을 세우신 분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우연히 흘러가는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언약을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여시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뜻을 완성하신다. 예수님은 이 구원 역사 안에서 한 부분을 담당한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는 아들이시다.

이때 "집"은 단순히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동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돌과 나무로 된 건물만을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부르시고 세우시는 분이다. 그분 안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집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의 재능이나 조직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교회의 중심에는 사람의 명성이나 전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있어야 한다. 성도는 교회를 바라볼 때도 이 관점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내가 소비하는 종교 서비스가 아니라, 내가 속한 하나님의 집이다. 그 집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8. 하나님의 집은 누구인가

히브리서 3장 6절은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집이다. 이 말은 성도의 정체성을 매우 깊게 설명한다. 성도는 단지 하나님의 집에 방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지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교회론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예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느슨한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성도는 소비자가 아니라 가족이며, 관람자가 아니라 지체다. 성도는 서로를 향해 책임을 가지고, 함께 소망을 붙들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부름받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를 기능적으로 바라본다. 나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내가 원하는 분위기인지, 내 필요를 얼마나 채워 주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3장은 더 깊은 관점을 제시한다. 교회는 내가 선택하고 소비하는 공간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집이다. 그 집 안에서 성도는 자신의 유익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믿음과 소망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집이라"는 선언은 영광스러운 말이면서 동시에 책임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집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그 집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의 방향, 성도의 삶, 공동체의 소망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와야 한다.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 종이 아니라 아들, 과거의 제도가 아니라 완성된 계시자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신다.

9. 소망의 확신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

히브리서 3장 6절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정체성을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는 믿음"과 연결한다. 성도는 은혜로 부름받았지만, 그 부르심은 끝까지 견디는 믿음으로 드러난다. 히브리서는 반복해서 성도에게 떠내려가지 말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은 두려움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믿음을 깨우기 위한 말씀이다.

소망의 확신을 붙든다는 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도 아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데서 나오는 담대함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셨고, 예수님이 그 집을 다스리시며, 예수님이 성도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 수 있다.

성도의 삶에는 흔들림이 있다. 신앙이 약해지는 때가 있고,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으며, 눈에 보이는 권위와 익숙한 제도에 기대고 싶은 때도 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도 그러한 압박 속에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들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한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나시며,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시다.

끝까지 붙든다는 말은 성도의 힘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성도는 자기 의지의 강함으로만 견디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붙드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성도를 붙드시는 은혜 안에서 가능하다. 예수님이 집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 집에 속한 성도는 오늘도 다시 믿음으로 설 수 있다. 소망의 확신은 성도의 감정 상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진다.

10. 히브리서 강해 아카이브 안에서 이 본문의 의미

장재형 목사의 히브리서 강해 아카이브에서 히브리서 3장 1-6절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히브리서 1장과 2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성육신, 고난과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었다면, 3장 1-6절은 그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 주제는 곧 하나님의 집, 곧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확장된다.

히브리서를 바르게 읽으려면 각 강해를 독립된 설교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히브리서는 하나의 긴 권면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최종 말씀으로 오신 아들이시며, 고난을 통해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신 구원의 주이시다. 또한 그분은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시며, 참된 대제사장으로서 성도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 이후 히브리서는 안식, 대제사장, 새 언약, 믿음의 경주, 흔들리지 않는 나라, 성문 밖 제자도의 주제로 나아간다.

이 큰 흐름 안에서 히브리서 3장 1-6절은 성도의 시선을 조정한다. 성도는 모세와 같은 위대한 종을 존중하되, 그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집에 속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는 소망의 확신을 끝까지 굳게 붙들어야 한다. 이것이 히브리서 5강이 아카이브 전체 안에서 갖는 핵심 위치다.

11. 오늘의 적용: 나는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히브리서 3장 1-6절은 오늘의 성도에게 매우 실제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걱정인가, 사람의 평가인가, 실패의 기억인가, 상처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인가. 생각의 중심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두려움을 오래 바라보면 믿음은 작아지고, 사람의 평가를 오래 바라보면 순종은 흔들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마음은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돌아간다.

또한 이 본문은 교회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한다. 나는 교회를 단지 익숙한 모임이나 활동의 장소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를 내 필요를 채우는 종교적 공간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히브리서 3장은 교회를 예수님이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보게 한다.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성도는 혼자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부름받은 거룩한 형제들과 더불어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은 성도에게 소망의 확신을 붙들라고 권면한다. 신앙의 길에는 흔들림이 있다.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다시 기억해야 한다.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셨다. 그분은 종이 아니라 아들이시며, 그 집을 끝까지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다. 성도의 소망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진다.

오늘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상이 아니라 예수님을 새롭게 바라보는 믿음이다. 히브리서의 권면은 단순하고도 깊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시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이시며,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라. 그분 안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지고, 소망의 확신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히브리서 3장 1-6절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신실하게 섬긴 종이지만, 예수님은 그 집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집으로서 소망의 확신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에게 모세는 율법과 출애굽, 광야 여정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세의 신실함을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실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 비교는 모세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섬긴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잠깐 떠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두고 주의 깊게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깊이 생각하는 대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두려움과 상처를 깊이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믿음은 다시 중심을 찾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종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그 집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아들이십니다. 종은 집 안에서 섬기지만, 아들은 집의 주권과 상속권을 가집니다. 따라서 모세의 신실함은 귀하지만, 예수님의 영광은 그보다 더 크고 본질적으로 탁월합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와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모임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도는 그 집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함께 소망을 붙들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묵상 질문

  •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두려움인가, 사람의 평가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인가?
  • 내 신앙생활에서 사람이나 전통, 제도를 예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교회를 예수님이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소비하는 종교 서비스로 보고 있는가?
  • 소망의 확신을 끝까지 굳게 붙들기 위해 오늘 내가 다시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인가?
  •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과 더불어 소망을 붙드는 공동체적 신앙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히브리서 3장 1-6절은 성도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신실한 종이었다. 그의 사역은 귀하고 그의 충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권위나 전통의 무게에 머무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사도이시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시며, 성도를 그 집으로 세우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집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붙들어야 한다. 이 확신은 자기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데서 나온다.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집을 세우신 아들,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성도는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장재형 목사
히브리서 강해 아카이브 저자
장재형 목사의 히브리서 강해를 중심으로 재편집한 히브리서 전체 강해 아카이브입니다. 흔들리는 성도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는 목회적 권면으로서의 히브리서를 본문 중심으로 해설합니다. 이 아카이브는 히브리서의 신학적 깊이와 목회적 적용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