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히브리서 1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우월성을 증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 아들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어 히브리서 2:1-4는 이처럼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경고는 두려움의 말이 아니라, 복음의 크기를 다시 보게 하는 은혜의 권면이었습니다.
히브리서 2:5-18은 그 큰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고,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맛보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며,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 본문은 히브리서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을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이 주제는 이후 히브리서 4-10장에 걸쳐 더욱 깊이 전개됩니다. 그 웅장한 신학의 씨앗이 이 짧은 본문 안에 모두 심겨 있습니다. 성도는 이 본문에서 고난받으신 예수 안에서 구원의 확실성과 깊은 위로를 함께 발견합니다.
본문 개요
히브리서 2:5-18은 인간의 창조 목적에서 출발해 죄로 인한 영광의 상실을 보여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을 통한 회복으로 나아갑니다. 본문은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오직 예수를 보라"는 답으로 전환되는 하나의 구원 서사입니다. 아래 구조를 먼저 파악하면 각 단락의 신학적 흐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 본문 | 핵심 내용 | 신학적 의미 |
|---|---|---|
| 히 2:5 | 장차 올 세상은 천사들에게 복종된 것이 아님 | 구원 세계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
| 히 2:6-8a | 인간은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 받은 존재 | 인간의 창조 목적과 존엄 |
| 히 2:8b | 아직 만물이 인간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함 |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 현실 |
| 히 2:9 | 오직 예수를 봄 | 구원의 시선은 그리스도께 향함 |
| 히 2:10 |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심 |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 |
| 히 2:11-13 |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심 | 성육신과 연합의 은혜 |
| 히 2:14-15 | 죽음으로 마귀를 멸하고 종노릇에서 해방하심 |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구속 사역 |
| 히 2:16-18 |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 |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시는 그리스도 |
1. 히브리서 2:5-18은 왜 인간의 영광을 말하는가
히브리서 2:5-18은 천사보다 뛰어나신 아들을 말한 뒤, 인간의 영광과 존귀를 다룹니다. 이것은 흐름상 매우 중요합니다. 히브리서는 단순히 예수님이 천사보다 높으시다는 사실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왜 낮아지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구원의 방향과 목적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을 죄에서 건져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은 잃어버린 인간의 영광과 창조 목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께 기억되고 돌봄받으며, 만물을 다스리도록 부름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와 죽음 아래에서 인간은 그 영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모순 앞에서 "오직 예수를 보라"고 권면합니다.
장차 올 세상은 천사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2:5는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장차 올 세상, 곧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될 세계는 천사 중심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회복될 인간의 세계입니다. 천사는 섬기는 영이지만, 구원의 중심에는 인간을 회복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인간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존재이다
히브리서 2장은 시편 8편을 인용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이 질문은 인간의 작음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스스로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며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기억하시고 돌보시기에 인간은 존귀합니다. 인간의 존엄은 자기 능력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가지신 뜻과 사랑에서 나옵니다.
2.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을 받은 인간
히브리서 2:6-8은 인간의 본래 자리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잠시 천사보다 낮게 하셨지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 때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과 연결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지음받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돌보고 다스리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광은 자기를 높이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아래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입니다.
인간의 작음과 하나님의 돌보심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질문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인간은 시간 앞에서 연약하고, 죽음 앞에서 무력하며, 자기 생명조차 스스로 붙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 8편은 인간의 작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인간을 생각하시고 돌보십니다. 인간은 작지만 하나님께 잊힌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이 은혜 위에 구원의 논리가 세워집니다.
만물을 다스리도록 부름받은 인간, 그러나 타락 이후의 현실
하나님은 인간을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통치의 사명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청지기로 창조 세계를 다스리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은 만물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질병, 두려움, 욕망, 죽음에 지배당합니다. 히브리서 2장은 인간의 본래 영광과 현재의 비참함을 함께 보여 줌으로써, 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지를 밝힙니다.
3. 아직 보지 못하는 현실, 오직 예수를 보는 믿음
히브리서 2:8 하반절은 매우 정직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인간은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 받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말씀과 어긋나 보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혼돈스럽고, 몸은 병들며, 관계는 끊어지고,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현실만 보면 절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2:5-18의 핵심 전환점입니다.
우리는 아직 만물이 인간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을 다스린다고 말하지만, 작은 질병 앞에서도 흔들립니다. 인간은 자유를 말하지만, 죄와 두려움과 죽음의 권세 앞에서 종처럼 살아갑니다. 이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인간은 본래 영광스럽게 창조되었지만, 죄로 인해 그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만물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오히려 만물과 죽음의 두려움에 지배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예수를 본다
히브리서는 인간의 무너진 현실을 본 뒤, "오직 예수를 보니"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시선은 절망적인 인간 현실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현실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잃어버린 영광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실패한 자리로 내려오셨고,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셨으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다가 낙심하지 않고, 오직 예수를 바라봄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4.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신 예수
히브리서 2:9는 예수님을 "천사보다 잠시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로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천사보다 낮은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잠시 낮아지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은 강등이 아니라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낮아지심이다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멀리서 구원하지 않으셨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관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혈과 육을 입고 인간의 자리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는 없으시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고난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성육신과 고난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고통과 한계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
히브리서 2:9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죽음입니다. "죽음을 맛보셨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한계 안으로 들어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경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5.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신 구원의 창시자
히브리서 2:10은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끌기 위해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도덕적 결함이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구원자의 사명을 완성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직접 걸으심으로 고난받는 자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완전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예수
구원은 개인의 죄 사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2장은 구원을 더 넓게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십니다. 인간은 잃어버린 영광을 스스로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자리로 오셔서 죽음을 맛보시고, 고난을 통과하시며, 믿는 자들을 영광으로 이끄십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장차 완성될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고난은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길이었다
예수님의 고난은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수치와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 고난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고난은 예수님을 구원의 창시자로 드러낸 길이었습니다. 주님은 고난을 통과하심으로 고난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중에도 버림받았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고난받으신 예수께서 그 길을 아시고, 그 길에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6.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는 예수
히브리서 2:11-13은 예수님이 성도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복음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연약한 우리를 형제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고, 성도는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이 둘이 한 근원에서 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성도 사이에 이루어진 깊은 연합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거룩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구별됩니다. 거룩함은 단지 윤리적 개선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세우십니다.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주님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와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의 정체성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는 실패와 수치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과 수치심에 묶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7.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2:14는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하였기 때문에 예수님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처럼 보이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참으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오셨으며, 인간의 죽음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성육신은 구원을 위한 연대이다
예수님이 혈과 육을 지니신 것은 단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속을 위한 연대였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려면 인간의 자리로 오셔야 했고, 죽음 아래 있는 자를 건지려면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야 했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이 내려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8.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히브리서 2:14-15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아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2장의 핵심 구속론적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여 죽음을 이기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 안으로 들어가셔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인간에게 죽음은 마지막 적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힘과 지혜를 무너뜨립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자기 생명을 붙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통과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무력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 주인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성도의 마지막 말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 생명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성도
히브리서 2장은 인간이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종노릇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단지 육체적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아닙니다. 상실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버림받을 두려움, 끝이 있다는 두려움이 인간을 묶습니다. 예수님은 그 두려움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성도는 여전히 고난을 겪고 죽음을 마주하지만, 죽음의 권세 아래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을 맛보신 예수, 죽음을 이기신 예수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9.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히브리서 2:16-18은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붙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으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대제사장 주제는 히브리서 전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제4강에서 시작된 이 주제는 이후 히브리서 4장, 5장, 7장, 9장, 10장에서 더욱 깊이 전개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완전한 중보자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시는 예수
예수님은 천사들을 붙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 곧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붙들어 주십니다. 성도는 스스로를 붙드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붙들린 존재입니다. 믿음의 삶은 내가 얼마나 강하게 주님을 붙드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신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시험과 고난 속에서도 성도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는 대제사장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는 중보자입니다. 히브리서 2:17은 예수님이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은 죄를 가볍게 넘기는 사역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를 실제로 속량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몸과 피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예수
히브리서 2:18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론으로만 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친히 시험과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성도에게 깊은 위로를 줍니다. 시험받는 성도는 혼자가 아닙니다. 고난 중에 버려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죄를 속량하시며, 때를 따라 도우시는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10. 시편 8편 인용이 증언하는 복음의 흐름
히브리서 2:6-8은 시편 8편을 인용해 인간의 본래 영광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 말씀을 단순히 인간론으로만 읽지 않습니다. 인간의 영광이 죄로 인해 손상된 현실을 말한 뒤, 그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습니다. 시편은 인간이 누구인지 묻고, 히브리서는 그 질문에 대해 "오직 예수를 보라"고 답합니다.
| 시편 8편의 주제 | 히브리서 2장의 해석 |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 |
|---|---|---|
| 사람이 무엇이기에 | 인간의 작음과 하나님의 돌보심 | 예수님이 인간의 자리로 오심 |
|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심 | 인간의 본래 창조 목적 | 예수님이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심 |
|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심 | 아직 완전히 보이지 않는 현실 |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통치 |
| 인간의 영광 | 죄와 죽음으로 손상된 영광 |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심 |
인간의 참된 영광은 인간 스스로에게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고난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영광은 회복되고 완성됩니다. 시편 8편은 창조 때의 인간을 노래했지만, 히브리서는 그 노래가 진정으로 성취되는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 구약이 가리킨 인간의 영광은 예수님 안에서 먼저 실현되었고, 성도는 그분 안에서 그 영광을 함께 받게 됩니다.
11. 장재형 목사 히브리서 강해의 네 번째 흐름
장재형 목사 히브리서 강해 아카이브에서 제4강은 앞선 세 강의 흐름을 이어받습니다. 1강은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선언을 다루었습니다. 2강은 그 아들이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임을 구약 인용을 통해 증언했습니다. 3강은 그 아들이 선포하신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첫 번째 경고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4강은 그 큰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1~3강이 "아들이 누구이신가, 그 구원이 얼마나 큰가"를 선포했다면, 4강은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해설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왜 인간이 되셨습니까? 왜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셨습니까? 히브리서 2:5-18은 그 질문에 대한 복음의 답입니다. 아들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과 아들의 낮아지심을 해설하는 것은 서로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낮아지심이 영광의 깊이를 더욱 드러냅니다.
또한 4강은 히브리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 주제인 "대제사장 예수"를 처음으로 소개합니다. 2:17-18에서 시작된 이 주제는 히브리서 4:14-16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5장-10장에 걸쳐 완전하게 전개됩니다. 따라서 4강은 히브리서 후반부 전체를 이해하는 신학적 열쇠입니다. 이 강을 깊이 읽은 독자는 이후의 강해를 훨씬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2. 오늘의 적용
맺음말: 오직 예수를 보라
히브리서 2:5-18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시작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으로 끝납니다. 인간은 영광과 존귀를 위해 지음받았지만 죄와 죽음 아래에서 그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고,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셨으며,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모든 사실을 "오직 예수를 보니"라는 한마디로 압축합니다. 인간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고난이 아무리 깊어도, 성도의 시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혈과 육을 입고 우리의 자리로 오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붙드시며,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십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나 더 완벽한 신앙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시선이 흔들릴 때마다 히브리서는 다시 말합니다. "오직 예수를 보라. 고난받으신 예수, 죽음을 이기신 예수, 영광으로 관 쓰신 예수,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는 예수, 우리를 붙드시는 예수를 보라." 그 예수 안에서 인간의 잃어버린 영광은 회복되고, 성도의 믿음은 끝까지 지켜집니다.
묵상 질문
- 지금 내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은 어디인가? 무너진 현실인가, 오직 예수인가?
- 하나님께서 나를 영광과 존귀를 위해 지으셨다는 사실이 오늘 내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가?
- 예수님이 혈과 육을 입고 나의 자리로 오셨다는 고백이 지금 내 고난 가운데 어떤 위로가 되는가?
- 나는 죽음과 상실, 실패의 두려움 앞에서 그것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가?
- 시험받는 중에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혼자 감당하려 하는가?